* 깨진 그림은 한글파일 참조해주세요.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9장 잉여가치율
제1절 노동력의 착취도
잉여가치가 투하자본가치의 증식분으로 나타남: s=C'-C={(c+v)+s}-(c+v)
280.1-2 투하된 자본 C가 생산과정에서 생산한 잉여가치[자본가치 C의 증식분]는 우선 생산물의 가치가 그 생산요소들의 가치총액을 넘는 초과분으로 나타난다. 생산요소들의 가치는 투하자본의 가치와 같으므로, 생산물가치가 그 생산요소들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투하자본가치의 증식분이라는 것과, 생산물가치가 그 생산요소들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생산된 잉여가치와 같다고 하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281.1 그런데 이 동어반복을 좀 더 상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산물의 가치와 비교되는 것은 그것의 생산에 소비된 생산요소들의 가치이다. 그러나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수단[기계와 같은]을 구성하는 불변자본은 그 가치의 일부만을 생산물로 이전할 뿐이고, 그 가치의 나머지 부분은 원래의 노동수단의 형태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이 후자의 부분은 ‘가치형성’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무시할 것이다. 우리가 가치의 생산에 투하된 불변자본이라고 말할 경우, 그것은 언제나 생산중에 실제로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만을 의미한다.
281.2 이러한 전제 하에서 C(500원)=c+v(410원+90원)라는 공식으로 되돌아가면, 이 공식은 C'(590원)=(c+v)+s(410원+90원+90원)로 전환되며, C는 C'으로 된다. 불변자본의 가치는 생산물에 이전되어 재현될 뿐이므로 생산과정 속에서 실제로 창조된 새로운 가치value-product(가치생산물)는 생산물의 가치와는 다르며, 따라서 실제로 창조된 새로운 가치는 (c+v)+s인 듯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v+s이다. 다시 말해, 가치생산물value-product은 590원이 아니라 180원이다. 만약 불변자본이 c=0이라면[자본가가 이전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소재와 노동력만을 사용하는 산업부문이 존재한다면], 생산물로 이전되는 불변자본의 가치는 없어지게 될 것이지만 90원의 잉여가치s를 포함한 180원의 가치생산물은 c가 거대한 가치액일 때와 똑같은 크기일 것이다. 반대로 만약 s=0이라면, 바꾸어말해 그 가치가 가변자본 형태로 투하된 노동력이 오직 등가물만을 생산한다면, C=c+v이고, C'=(c+v)+0으로 되고, 따라서 C=C'으로 될 것이다. 이 경우 투하된 자본은 그 가치를 증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잉여가치가 v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결과임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요소들
282.1 이미 알고있듯이 잉여가치는 단순히 v, 즉 노동력으로 전환된 자본부분의 가치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결과일 뿐이며, 따라서 v+s=v+Δv이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v만이라는 사실과 그 변화의 조건들은, 자본의 가변부분이 커짐에 따라 총투하자본도 또한 함께 커진다는 사정에 의해 불분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과정을 순수한 형태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생산물의 가치 중 불변자본 가치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 부분을 완전히 제외시킬 필요가 있다.
☆ 283.1 또 하나의 곤란은 가변자본의 원래 형태로부터 발생한다. 가변자본은 앞의 공식속에서 410원의 불변자본, 90원의 잉여가치와 마찬가지의 형태로, 즉 90원의 가변자본으로 나타난다. ‘90원’은 하나의 주어진 양[불변량]이므로, 그것을 가변량으로 취급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90원의 가변자본은 여기에서는 실제로는 이 가치가 겪게 되는 과정의 상징일 따름이다. 노동력의 구매에 투하된 자본부분(가변자본 v)은 일정한 양의 대상화된 노동이고, 따라서 그것은 구매한 노동력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불변의 가치량이다. 그러나 생산과정 자체에서는 투하된 90원 대신 활동하는 노동력이 등장한다. 즉 죽은 노동 대신 살아있는 노동이, 정지된 양 대신 유동하는 양이, 불변량 대신 가변량이 등장한다. 그 결과는 v의 재생산+v의 증가분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전체과정은 노동력으로 전환된, 본래는 불변적인 가치의 자기운동이라는 외관을 띤다. 과정도 결과도 모두 이 가치의 자기운동 덕분이다. ‘90원의 가변자본’ 또는 ‘일정한 양의 자기증식하는 가치’라는 표현이 모순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는 이 표현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가변자본은 예컨대 ‘90원’이라는 화폐액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90원은 하나의 주어진 불변량이므로, 이 부분이 ‘가변/증식’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90원’의 ‘가변’자본, ‘일정한 양’의 ‘자기증식’하는 ‘가치’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한다. 즉 고정된 일정량이 변한다는 모순, 주어진 일정한 양의 대상화된 노동이 스스로 증식한다는 모순. 그러나 생산과정 자체에서는 투하된 90원 대신 살아있는 노동력이 등장한다. 이 살아있는 노동력(유동하는 양, 가변량의 등장)은 산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그렇다면 위의 표현이 드러내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모순은 무엇인가? 산 노동의 창조적 힘이 죽은 노동의 자기증식하는 힘으로 전도되어 드러나는 것?
가치창조와 가치변화를 고찰함에 있어 불변자본 부분을 배제함: 생산물의 가치value of product가 아닌 가치생산물value-product을 고찰: 잉여가치율의 도출
283.2-284.1 자본의 일부를 노동력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의 다른 한 부분은 반드시 생산수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화학적 과정에 증류기나 기타 용기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분석할 때에는 그 기구들을 무시할 수 있다. 가치창조와 가치변화를 그 자체로서 고찰하는 한, 불변자본의 물질형태인 생산수단은 가치를 창조하는 유동적인 노동력이 합쳐지는 소재를 제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즉 이 소재의 성질이나 가치는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불변자본 부분을 0이라고 가정한다. 투하되는 자본은 v, 생산물가치(c+v+s)는 가치생산물(v+s)로 축소된다. 만약 가치생산물=180원이 주어져있고, 거기서 가변자본=90원을 공제하면 잉여가치=90원이 남게 된다. 이 90원=s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절대량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의 상대량, 즉 가변자본이 가치증식된 비율은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 s/v에 의해 표현된다. 가변자본의 ld와 같은 가치증식의 비율 또는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잉여가치율이다.
필요노동시간/필요노동과 잉여노동시간/잉여노동
285.1 노동자는 노동과정의 일부 기간에는 오직 자기 노동력의 가치[즉 자기에게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를 생산할 뿐이다. 그의 노동은 사회적 분업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생활수단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수한 상품의 형태로 자기 생활수단의 가치와 동등한 가치 또는 그가 생활수단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자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 독립적으로 노동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그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유지에 필요한 생활수단을 얻기 위해 여전히 하루 평균 그만큼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1노동일 중 그가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하는 부분에서는, 그는 자본가가 이미 그에게 투하한 노동력 가치의 등가물을 생산할 뿐이며, 새로 창조된 가치는 투하된 가변자본의 가치를 대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창조된 가치가 투하된 가변자본의 가치를 단순히 재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남). 1노동일 중 이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부분을 필요노동시간이라 부르며, 이 시간 중 수행하는 노동을 필요노동이라 부른다. 이 노동은 노동자의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와 무관하게 그에게 필요하며, 이 노동이 자본과 자본가적 세계에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계속적인 생존이 자본의 세계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286.1 노동과정의 제2 기간 동안 노동자는 잉여가치를 창조하는데, 이는 자본가에게는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커다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노동일의 이 부분을 맑스는 잉여노동시간이라 부르며, 이 시간 중 수행하는 노동을 잉여노동이라 한다. 가치 일반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노동시간의 응고로, 대상화된 노동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잉여노동시간의 응고로, 대상화된 잉여노동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경제적 사회구성체들 사이의 차이는 이 잉여노동이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로부터 착취되는 그 형태에 있다.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 혹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도로서의 잉여가치율
287.1-3 가변자본의 가치=그것으로 구매한 노동력의 가치: 노동일의 필요노동시간 부분을 결정하기 때문에, 다른 한편 잉여가치는 노동일의 잉여노동시간 부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s/v = 잉여노동/필요노동. 이 두 비율은 동일한 관계를 전자에서는 대상화된 노동의 형태로, 후자에서는 살아있는 노동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 또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다.
제2절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물의 비례배분적 부분들로 표시
12시간 노동일 = 필요노동시간 6시간 + 잉여노동시간 6시간, 잉여가치율 100%
면사의 가치 30원 = 24원[c]+3원[v]+3원[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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