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제7장 제2절 가치증식과정(valorization process)

발제문 2009. 8. 18. 03:1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제2절 가치증식과정(valorization process)

 

발제자 : 윤영광

(246.1)

자본가의 생산의 궁극적 목표는 잉여가치의 획득이다. 그런데 잉여가치를 생산하려면 그는 우선 사용가치뿐 아니라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때문에 사용가치와 관련된 인류의 자연필연적 활동과 관련된 노동과정에 뒤이어 고찰되는 것은 가치증식과정이다. 이제 상품생산은 가치생산의 측면에서 고찰된다.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려고 할 뿐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려고 하며, 사용가치뿐 아니라 가치를, 그리고 가치뿐 아니라 잉여가치를 생산하려고 한다.”

(247.1)

“상품 그 자체가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생산과정도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어야 한다.”

(247.4~249.3)

생산과정의 요소들 중 객체적 부분, 즉 생산수단의 가치가 생산물의 가치에 대해 갖는 관계를 서술하는 부분이다. 생산수단의 가치, 즉 생산수단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은 생산물의 가치, 노동시간을 계산하는 데 포함된다. 예컨대, “면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면화를 원료로 하는 면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일부이고, 따라서 그것은 면사에 포함된다. 면화로부터 실을 뽑을 때 마멸되거나 소모되지 않을 수 없는 방추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생산수단은 사용가치의 생산에 실제로 이바지해야만 한다. 둘째, 이전되는 노동시간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만 계산된다.

(250.2)

생산과정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주체적 부분, 즉 노동이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부분에 대한 서술이 시작되는 문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된 노동은 1절의 노동과정에서 고찰되는 노동과는 전혀 다른 노동, 즉 사용가치가 아닌 가치의 원천이 되는 노동이다. “여기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이미 노동의 질 ․ 성질 ․ 내용이 아니고 오직 노동의 양뿐이다.”

(251.1)

가치증식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 유용노동이 아닌 추상노동이다. “우리는 방금 방적노동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노동[방적공의 생명력의 지출]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방적노동이 노동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노동력의 지출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방적이라는 특수한 노동이기 때문은 아니다.”

(251.2)

가치량 계산의 문제.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이 가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계산된다.

(251.3)

단순한 노동과정에서 원료와 생산물이 물질, 사용가치, 유용성의 관점에서 고찰되는 반면, 가치증식과정에서 원료는 “오직 일정한 양의 노동을 흡수하는 역할”, 생산물은 “노동의 계량기”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제 일정한[경험적으로 확정된] 양의 생산물은 오직 일정한 양의 노동[일정한 양의 응고된 노동시간]을 대표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 일정한 시간[또는 날]의 사회적 노동의 물적 형태일 따름이다.”

(252.2~253.2)

노동자가 6시간, 즉 1/2노동일을 노동하여 10파운드의 면화를 10파운드의 면사로 전환시키는 경우를 가정하여 애초에 투하된 가치(2와 1/2노동일=15원 : 10원은 면화, 2원은 방추, 3원은 노동력)가 그대로 생산물의 가치로 나타난 상황을 묘사. 가치증식에 성공하지 못한 자본가의 항변과 맑스의 조롱(?).

(256.1)

앞의 가정에서 노동자가 반일만을 노동하는 것으로 가정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노동력의 재생산에 반일만큼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해서 노동자가 반일만큼만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에게 중요한 것, 잉여가치와 가치증식의 비밀은 노동력 상품의 독특한 사용가치, 즉 “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좀 길지만 관련되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노동력에 포함되고 있는 과거의 노동과 노동력이 제공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노동은, 다시 말해 노동력의 매일의 유지비와 노동력의 매일의 지출은 그 크기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양이다. 전자는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규정하며, 후자는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형성한다. 노동자의 생명을 24시간 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1/2 노동일이 필요하다는 사정은 결코 노동자가 하루종일 노동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는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257.1)

앞 문단의 내용을 방적노동이 12시간 수행되는 상황을 통해 설명하는 문단. 자본가는 3원의 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258.1)

이 모든 과정에서 상품교환의 법칙은 조금도 침해되지 않는다. 자본가는 생산과정에 필요한 모든 것(물론, 노동력 상품도 포함하여)을 그 가치대로 구입하여, 생산된 상품을 제 가치대로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는 자신이 애초에 유통에 던져 넣었던 것보다 3원이나 더 많이 유통으로부터 끌어낸다. 5장 말미에 제기되었던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해야 하는 동시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모순이 직접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도 이 문단이다. 잉여가치의 발생, 즉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은 유통에 의해 매개된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상품시장에서 노동력의 구매에 의해 조건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요강>에서 ‘소유통’으로 설명되고 있는 부분) 또한 그 전환은 유통영역의 외부에서 수행된다고도 말해지는데, “유통은 생산분야에서만 이루어지는 가치증식과정을 준비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258.2)

자본가는 화폐를 상품들로 전환시키고, 죽은 물체에 살아 있는 노동력을 결합시킴으로써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258.3)

가치창조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비교. “가치증식과정은 일정한 점 이상으로 연장된 가치창조과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가치형성과정은 생산수단의 가치가 생산물의 가치로 ‘이전’되는 과정과 노동력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259.1)

가치형성과정과 노동과정의 비교. 7장 전체 내용의 간명한 요약이다. 좀 길지만 문단 전체를 인용해 보자. (인용은 텍스트 해당부분으로 대체)

(259.2)

“사용가치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인 한에서만 계산에 들어간다”는 말의 몇 가지 의미. 우선 노동의 대상적 요소들, 생산수단의 상태가 정상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평균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력 또한 평균의 기능, 능률, 숙련, 민첩성을 담지한 상태로 평균수준의 긴장도와 강도로 지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원료와 노동수단의 낭비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해야 한다’, ‘안 된다’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방식으로, 즉 사회적 평균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수행된 노동부분은 가치의 생산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261.1)

“상품의 분석을 통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는데, 이제 이 차이가 생산과정의 두 측면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261.2)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란 면에서 보면, 생산과정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통일이란 면에서 보면, 생산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며 상품생산의 자본주의적 형태다.” 상품은 비자본주의적 사회형태에서도 발견된다. 심지어 가치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도 거론된 바 있다. 자본주의적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상품의 존재가 아니라 상품생산의 전면화, 일반화이다. 또한 이 문단에서 자본주의의 규정적 특징은 잉여가치의 존재, 즉 노동력 상품의 존재로 이야기되고 있다. 상품생산의 일반화와 노동력 상품의 등장이 어떠한 관련을 갖는지는 논리적 탐구뿐만 아니라 역사적 탐구 또한 필요로 하는 문제일 것이다.

(261.3~끝)

단순노동과 고급노동의 문제. “사회적 평균노동보다 고도의, 복잡한 노동은 단순한 미숙련 노동력보다 많은 양성비가 소요되며 그것의 생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동이 드는 노동력의 지출이다. 이러한 노동력은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고급 노동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동일한 시간 안에 상대적으로 더 큰 가치로 대상화된다.” 그러나 단순노동에서든 고급노동에서든 잉여가치가 노동력 가치의 재생산 분을 초과하는 노동에 의해 발생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하루의 고급노동이 X일의 사회적 평균노동으로 환원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치와 잉여가치, 즉 노동의 양적 측정이 문제가 되는 한, 노동자가 단순한 사회적 평균노동을 수행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유용하다.